본문 바로가기
정치 사회

내가 생각하는 '노동중심성'

by 낯선여행 2013. 1. 23.

좌파가 신봉하는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형이상학, 관념론을 부정했지만, 아이러니하게 그가 주장하는 유물론이니 사적 변증법 등은 노동자들에게는 또다른 형이상학일뿐 입니다.


'노동중심성'은 철저히 현실을 직시해야한다고 봅니다.


최근 진보신당 대표경선에 나온 '금민'후보의 책『좌파당의 길』을 보면, 그가 지적한 여러가지 문제점 인식에는 동의하나 그에 대한 대안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상사회를 제시합니다. 이것이 실현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런 좌파의 급진적 (또는 비현실적) 대안을 '홍기빈'소장도 칼럼을 통해서 비판합니다.

[좌파당의길 by 금민.pdf / 홍기빈 소장의「경제위기 상황에서 진보가 승리하는 길」]



노동자들은 이론가도 전업 활동가들도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그냥 생활인일 뿐입니다.


'노동중심성'이 너무 거창하게 맑스주의, 사적 유물론이니 하는 등의 교조주의로 흐르면 백프로 망합니다. 이론가들 입장에서 보면 안됩니다. 철저히 생활인 노동자 입장에서의 '노동 중심성'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중심성을 최대한 단순한 개념으로 설정해야합니다.

단순하게 '연대', 더더욱 단순하고 쉽게 표현하자면 '같이 먹고 살자'의 정신...

이것이 현실적 생활인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 중심성'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쌍차문제의 경우 노동자들의 1/3이 정리해고되고, 2/3이 살아 남았습니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퇴근 후 같이 술마시던, 휴가때 가족들과 같이 여행다니던 동료들 사이에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해고가 되었지만,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침묵했죠.

살아남은 자들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생존 욕구'는 현실이기에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다만, '같이 먹고 살자'의 정신으로 쌍차문제에 1/3+2/3이 모두 사측과 투쟁했다면 그런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차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현저히 낮은 임금에 고용보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죠. 기업은 수조원의 흑자를 내면서도 비정규직의 투쟁에 외면하고 거기에 정규직도 덩달아 침묵하죠. 역시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투쟁에 '같이 먹고 살자'라는 정신으로 동참했다면 해결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중심성'이란 것이 깊게 들어가면 끝도 없는 것이고 그건 이론가들의 영역에 맡겨두고,

현 시점의 현실에서 대중성 확보를 위해서는 "같이 먹고 살자"의 단순 무식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